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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일
직장사역연구소 소장
직장사역 칼럼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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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직업 시대의 직업관

 
평생직장인가, 평생직업인가? 가만히 돌아보니 10여 년 전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받던 시절 무렵에 이 두 단어들이 자주 신문지상에 오르내렸다. 이제 평생직장 시대가 아니고 평생 직업 시대라는 것이었다. 과거에는 젊은 날 한 직장에 취직하면 나이 들어 정년퇴직할 때까지 소처럼 열심히 일하면 그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한 우물을 파라, 이런 이야기도 하면서 이력서에 지나온 회사들의 이름이 많으면 좀 문제가 많은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시대의 일터 현실은 어떤가? 내가 한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오래 있고 싶다고 해도 자기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평생직장보다 평생직업이라는 개념에 더 가까워진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평생직업 개념은 평생직장 개념보다 더 성경적이다. 우리는 흔히 평생직장 개념은 바람직하고 성경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의 전통 사상인 유교적 직업관이 평생직장 개념이다. 임금과 부모, 그리고 스승을 대하듯 직장의 상사를 대하라는 충효 사상에 근거한 직업관이다. 이것이 발전해서 일본의 ‘사무라이 직업관’이 되었다. 일본인들에게는 천직(天職) 개념이 있어서 도쿄의 한 모퉁이 몇 평 안 되는 우동 집을 몇 대째 대물림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일본인의 천직 개념이다.

 
<철도원>이라는 일본 영화를 보면 이런 사무라이 식 직업관을 잘 보여준다. 평생을 철도원으로 일한 주인공 오토는 손님이 줄어들어 노선을 폐선하고 그 시점에 자신이 정년퇴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용납하지 못한다. 결국 극단적인 길을 택하여 비장하게 자살하고 만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면 일본인의 천직관이 무엇인가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성경적인 직업관은 평생직업이다. 우리가 평생 살면서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지고 일할 수 있다. 모세의 경우를 보아도 그는 애굽의 왕자였다가 목자로 일했고 또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일했다. 다윗만 해도 목동 겸 왕의 악사로 일하다가 군대장관과 천부장, 즉 군인이 되었다가 망명 생활을 했고 나중에는 왕이 되었다.

 
이렇게 전직(轉職)을 할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을 때에나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다. 혹시 우리가 현재 일하고 있는 곳이 내가 평생 일할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요셉을 보아도 그는 감옥에 있을 때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준 후 자기를 그 감옥에서 구출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창 40:14-15). 떠나고 싶었다. 감옥이 싫었다. 지긋지긋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그렇게 자기가 있던 곳을 떠나고 싶었지만 요셉은 특별한 자세로 일했다.

 
요셉은 두 고관 죄수들을 섬기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얼굴에 근심하는 빛이 있는 것까지 살폈다. 요셉은 이렇게 성실했다. 자신이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곳이었지만 그곳에서 일할 때에도 최대한의 성실을 다해 일하고 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가 하는 일을 하나님이 내게 주신 평생 직업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우리의 일을 주님께 하듯이 해나갈 수 있어야 하겠다. 오늘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청년들도 이 사실을 숙지해야 한다. 아르바이트로 하게 된 일, 임시적으로 맡게 된 일이라도 주님께 하듯이 하면 하나님이 지켜보신다. 언제나 그 일을 하게 하나님이 두시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후배가 들어와서 그 일을 하고 자신은 또 다른 일을 해나갈 수 있다. 요셉이 그러지 않았는가? 언제나 감옥에 있지 않았고 10년을 넘겨 노예생활을 하지도 않았다. 이런 사실을 기억하면서 평생직업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설계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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