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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클리닉] 신데렐라 부부의 파경 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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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으로 돌아왔다. 궁중 생활은 꿈 속에서 그리던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매일 많은 사람을 접견해야 하고 때로는 중요한 국사에 전문적인 의견도 개진해야 했다. 파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신데렐라는 잘해보려고 애썼지만 그럴수록 실수가 많아졌고 힘들기만 했다. 잘 보살펴주던 왕자도 자신의 일에 바빠지면서 대화마저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격무에 시달린 왕자는 늘 피곤해 하고 어떤 때는 짜증도 냈다.
 신데렐라는 은근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억눌러 참다가 서서히 투정을 부리고 바가지를 긁어댔다. “처음 날 찾기 위해 유리 구두를 가지고 전국을 돌아다니던 때처럼 나를 사랑해달라. 왜 옛날하고 달라졌느냐?” 한두 번 투정을 받아주는 것 같던 왕자도 어느 날부터는 아예 그런 문제에 초연한 듯한 태도를 취하고 무관심해져버렸다.
 신데렐라는 점점 불안했다. 왕자의 주위에는 교양 있고 뛰어난 미모의 여자들이 많았다.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심지어 하녀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자는 귀가 시간이 늦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왕자도 집에 와서 쉬고 싶고 사랑을 받고 싶은데 자꾸 의심하고 불평하니까 귀찮아지고 사랑을 해주고 싶다가도 짜증이 나서 못해주고 만다. 왕자는 신데렐라가 사랑받을 만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럴수록 신데렐라는 역시 왕자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확인 아닌 확인을 하게 됐다.

 다시 써보는 신데렐라 이야기다. 이야기를 읽고 부부들과 더불어 토론을 해보았다. 이 가정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냐가 첫 질문이었다. 답은 각기 달랐다. 신데렐라에게는 구체적인 모델이 없었다. 계모의 질투만을 배웠다. 그러니 진정한 사랑을 모른다. 또한 그녀에게는 현실 감각이 없다. 심성만 고왔지 능력 있는 여인은 아니었다. 사람이 마음만 가지고 살아갈 수 없는 것 아니냐. 또 어떤 이는 ‘눈높이 결혼’이 아닌 데 비극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브라함도 아들 이삭을 결혼시킬 때 가나안 이방 여인이 아닌 ‘내 고향, 내 족속’을 찾지 않았던가? 즉 같은 문화가 중요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판이하게 다른 문화에서 자랐다. 그러므로 둘의 결혼은 처음부터 비극을 잉태하고 있었다. 대화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어떤 남편은 신데렐라의 불안 심리가 문제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 어떤 아내는 왕자의 문제 해결 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이야기는 더욱 흥미를 더해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비판하고 분석했다. 마치 모두들 결혼 상담가가 된 듯했고 한결같이 정신 분석가들 같았다. 그러나 정작 그 이야기 속에 우리의 현실이 있다는 건 간과하는 듯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두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첫째, 이 가정은 결혼 적응 기간 없이 일에 빠져든 게 문제로 지적된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취하였거든 그를 군대로 내어 보내지 말 것이요 무슨 직무든지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 년 동안 집에 한가히 거하여 그 취한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신 24:5). 소위 말해 신혼 규례다. 이 규례 속에 명백하게 못박고 있는 것은 ‘한가로이’다. 바빠서는 안 된다. 여기서 일 년은 최소한 대를 이어갈 수 있는 일 년을 의미한다. 한편 사회 심리학자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최소한의 적응 기간이기도 하다. 서로를 더 깊이 아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런 여유가 없었다. 때문에 결혼하자마자 시댁에서 일 년간 데리고 있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소중한 적응 기간이 박탈된다는 이유다. 시어른들 눈치를 봐야 하는가 하면 시댁 식구들 비위를 맞춰야 한다. 그러다 보면 서로에게 신경쓸 여유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는 간격이 벌어지고 시부모와도 원수가 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왕자는 최소한 아내를 즐겁게 해주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 그의 결혼은 마치 결혼한 사람이 되기 위한 결혼으로 보인다. ‘왕’으로서의 역할에는 성공하고 있는지 몰라도 ‘남편’으로서의 역할에는 실패하고 있다. 남편의 의무 가운데 하나가 아내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신데렐라는 괴롭다. 왕자에게는 왕위 수업도 중요하지만 결혼 준비 교육도 필요하다. 그런데 그게 없다. 그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배워야만 했다. 성경은 말한다.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둘째, 신데렐라의 내적 무질서를 보게 된다. 그녀의 심리 상태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정해 보인다. 우선 강박 관념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화를 처리하는 방법이 매우 미숙하다. 무조건 참는다. 그리고는 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폭발한다. 비교하는 마음도 자리잡고 있다. 심지어 애정 중독 증세도 보인다. 자꾸만 확인하려든다. 마음은 점점 불안해지고 나중에는 의심까지 하게 된다.
 신데렐라처럼 미국의 대통령인 빌 클리턴이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내 인생의 목표는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이었지만 모범 가정을 경험해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가정 생활이 파경을 맞을 것이라는 잠재 의식에 시달려 왔다.”
 신데렐라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자기 사랑’이다.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내가 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달려 있다.” 핵심은 이것이다.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면 남을 사랑할 줄 모르게 되며 상대방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때문에 이웃 사랑은 자기 사랑에서 출발한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또다시 비극의 신데렐라를 만들지 않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원용일 목사의 직장사역 칼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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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돈성
2011-10-25
나의 엣날 신혼 때의 생활을 더듬어 보면서 문제를 찾을수 있고 젊은이들의 장래 새가정을 엮는 생활을 돌아보아 성경이 지도하는 실질적 도움을 효과적으로 줄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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