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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설교]직장주제 (3)느헤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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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ackground: #ffffff;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크리스천은 어떤 성공을 꿈꾸어야 하나? (느헤미야)

(1:1-11)

이전에 출판사에서 일할 때 발간한 소책자들 중 동일한 저자가 쓴 비전이라는 제목의 책과 성공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그런데 그 중 비전이라는 책이 월등히 많이 판매되었다. 아마도 크리스천들은 ??성공??이라는 표현 속에는 왠지 세속적인 욕심이 개입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크리스천들 중에서 이른바 성공했다는 사람에 대해서는 뭔가 세속적인 혐의가 있는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곤 한다. 크리스천이면서 ??성공??을 추구한다는 것은 뭔지 어울릴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성공의 기준을 세상과 달리 성경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실패했다고 비난하더라도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면 성공한 사람들을 성경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이나 세례 요한, 예수님의 제자들,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 심지어 예수님조차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실패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지 않았는가.

그러나 성경 속에는 세상적 기준으로 보아도 성공한 사람들이 더러 있다. 대표적으로 요셉이나 다니엘, 느헤미야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방 나라에 종이나 포로로 잡혀가서 그 나라의 최고위 관직에 올랐던 사람들인데 신앙적인 기준에서도 결코 모자람이 없는 훌륭한 믿음을 가졌다. 이 중 느헤미야를 통해서 크리스천들이 가질 성공관을 살펴보자.

인생의 목적이 남달라야 한다(1-4)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칙령을 발표하여 유대인들이 스룹바벨의 인도하에 고국으로 돌아간 때가 BC 538년이었다. 그 후 79년이 지난 BC 458년에 제사장 에스라가 유대인들을 이끌고 두 번째 귀환을 했다. 물론 스룹바벨의 1차 귀환 후에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유월절 제사를 회복하는 일이 있었고(5-6) 에스라의 귀환 후에는 종교적?도덕적 타락을 극복하기 위한 회개와 개혁 운동이 일어났다(7-10).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후에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1세의 측근 신하였다. 그러던 중 고국에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이 불탔다는 비보(悲報)를 들었다. 그 사실을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한 느헤미야가 기도하며 준비하여 마침내 왕에게 허락을 얻고 예루살렘에 총독으로 부임하여 성벽의 재건을 이루었던 것이다(BC 444).

사실 느헤미야는 조국이 망하기는 했지만 그 자신은 유대인 포로들 중 매우 성공한 축에 속했다. 소수의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아직 바사 왕국에는 더 많은 유대인들이 이미 정착하여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서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관심사는 따로 있었다. 느헤미야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비록 고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하지는 않았지만 조국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하는 그 땅을 잊지 않았다. 특히 느헤미야의 관심사는 남달랐다. 특히 그는 사람과 일 중에서 사람에게 먼저 관심을 가졌다. 그가 예루살렘을 다녀온 형제 하나니에게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2)을 물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그런 느헤미야의 질문에 대한 하나니의 대답도 남은 자와 예루살렘 성()”의 순서였다. 순서는 관심사를 말한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보다는 사람에게 더욱 관심이 있었다. 후에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면서 유대 총독의 임무를 수행했으니 성벽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을 것이다. 그럼에도 느헤미야는 사람에게 먼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느헤미야가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께 배웠음이 분명하다. 역대하 3615절을 보면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성전)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 사자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다고 한다. 하나님은 심지어 성전보다도 백성들을 아끼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터와 교회와 조국을 세우기 위해 가지는 비전도 이렇게 하나님과 느헤미야를 닮아 사람 중심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직장에서 사람들이 일하는 스타일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일 중심스타일과 사람 중심스타일이다. 물론 일 중심이라고 해서 사람은 전혀 생각하지 않거나 사람 중심이라고 해서 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그 차이는 분명히 있다. 일 중심 스타일인 리더 아래서는 상처를 입거나 다치기 쉽고 사람 중심 스타일 리더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일을 제대로 배우지 못할 수도 있다.

일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아랫사람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리더들은 대개 자신이 우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아랫사람들에게도 일의 성취를 강조하는 것인데 그것이 지나친 것이 문제이다. 반면 사람 중심으로 생각하면 일의 목표란 단순히 일을 성취하는 것만이 아니고 성취를 넘어서는 완성(fulfillment)이라는 것을 안다. 일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중요한 것을 우리가 반드시 알고 사람을 세워 꿈을 이루기 위한 비전을 가져야 한다.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5-9)

한때 크리스천들이 고지를 점령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에 대한 비판이 있기도 했다. 정치 경제 사회의 각 분야에서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있으면 크리스천들이 세상과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인데 토씨 하나만 고치면 정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지도 점령하라”. 어떤 자리에 있거나 주님께 하듯 해야 하는 것이 우리 크리스천 직업인의 바람직한 자세이다. 그런 측면에서 고지도 역시 우리 크리스천들이 노력하여 점령해야 할 곳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고지에 올라서지는 못하지만 고지를 점령해야 할 사람들도 있다. 그럼 이렇게 고지를 점령하는 사람들은 어떤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 느헤미야에게서 배우는 것은 올바른 역사의식이다.

느헤미야가 성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하나는 그가 가진 분명한 역사의식이다. 느헤미야의 역사의식은 유다 백성들이 고통 받고 있는 원인이 범죄 때문임을 알았다는 점이 특징이다(6-7). 그래서 느헤미야는 자기 민족의 죄악이 마치 자기의 잘못인 듯 회개하고 있다. 이런 분명한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이 성공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성공관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의식이 분명한 사람이 분명한 책임 의식을 가질 수 있다. 느헤미야는 기도에서 보여주는 대로 유다 민족이 회개하면 회복될 것에 대한 확신도 강했다. 그랬기에 느헤미야는 자신의 성공에 대한 분명한 기대를 가졌고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담대히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다(8-9).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성공을 기도해야 한다(10-11)

느헤미야는 자신이 모시고 있던 아닥사스다 왕에게 은혜를 입어서 어려움에 빠진 민족을 구할 수 있기를 간구했다. 그가 왕에게 은혜를 입기 원한 것은 더욱 승진하여 영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에 빠진 조국의 재건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었다. 이런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성공을 기도한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왜 세속적 성공주의라고 비난받겠는가?

우리 크리스천들도 세상적 성공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다. 다만 그 동기가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 자신의 명예와 안락, 기껏해야 가족을 위한 성공과 부를 추구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크리스천의 성공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나의 성공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수단이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선한 동기를 가지고 노력해야 진정한 성공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성공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 세상의 성공, 즉 고지를 모든 사람이 점령할 수는 없듯이 내가 느헤미야가 되지는 못할 수 있다. ‘느헤미야가 아니면 실패한 인생인가? 그렇지는 않다. 크리스천의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이국땅에서 자리를 잡았기에 별 걱정 없이 편히 살 수 있었지만 민족을 위해 염려하던 느헤미야는 동포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기에 그것을 자신의 문제인양 아파하면서 기도했다. 그래서 마침내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술 관원으로 왕의 음료를 책임지면서 왕에게 어려움을 호소하고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이런 성공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성공일 수밖에 없다. 당신도 이런 성공을 추구하라. 성공할 분명한 이유가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기꺼이 성공을 허락하실 것이다.



[원용일 목사의 직장사역 칼럼 10]
[원용일 목사의 직장사역 칼럼 9]
 
권율
2011-10-29
감명 깊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주님 안에서 늘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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