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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설교]직장주제(2)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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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ackground: #ffffff;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그렇다고 비전 바겐세일, 아니면 비전 쟁취? (야곱)

(25:27-34, 27:1-45)

얼마 전 신학대학 동창인 한 늦총각 친구 목사의 결혼 청첩장을 받았는데 시작하는 인사말을 보고는 소리 내어 웃으며 그 재치를 즐겼다. “이삭과 리브가 처럼 만나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가 이삭이 결혼할 때처럼(25:20) 나이 마흔이기 때문이다! ‘이삭처럼 20년 후에 자식을 낳는 것은 닮지 말아야지.’라고 중얼거리며 늦게 이루는 가정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도록 축복했다.

이삭은 온유한 사람이라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대단한 집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집념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자식을 얻고 또 블레셋 사람들이 집요하게 우물을 막으며 방해해도 그들보다 더한 집념을 가지고 평화적으로 맞서서 넓은 우물을 확보해내었다. 이런 집념을 물려받은 아이가 바로 야곱 아니겠는가? 야곱은 어머니의 태속에서부터 쌍둥이 형과 싸웠고 출생할 때에도 먼저 나가는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올 만큼 집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너무 튀는 인생을 살았던가.

젊은 시절, 아니 훨씬 어린 나이 때부터 꿈이 너무나 분명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그렇지 못한 보통 사람들인 우리는 주눅이 들곤 한다. 그렇게 어릴 적부터 꿈이 분명하면 장점이 있긴 하다. 그 꿈을 일찍부터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젊은 날의 야곱이 에서와 달랐던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안타깝게도 에서처럼 인생의 꿈을 깨닫지 못해 그저 한 끼 식사로 맞바꾸는 사람도 있다. 어릴 적부터 분명한 꿈이 있어야 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획일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아니지만 꿈을 세일한 에서처럼 살면 안 된다.

한편 야곱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원대한 꿈이 있다고 하면서 제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그리 어렵지 않게 보듯이 야곱은 꿈도 집념도 충분했지만 그 꿈을 이루는 행동이 잘못 되었다. 과연 에서와 야곱, 이 두 사람은 꿈을 어떻게 잘못 다루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들의 쓴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어 보자.

제 갈 길을 가는 것은 좋으나 집안이 나뉘다니(25:27-31)

거의 같은 시간에 태어난 쌍둥이였지만 에서와 야곱은 너무나 달랐다. 그런데 그렇게 다른 것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란성 쌍둥이가 신체적 특징이 다르고 기질적으로 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또한 그렇게 다른 특징이 그들의 직업 선택에 반영되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하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달란트가 제대로 반영되었다. 특히 에서가 익숙한”(skillful) 사냥꾼이라고 묘사되는 것을 보면(27) 에서는 자신이 받은 들사람이라는 달란트를 자신의 직업에 효과적으로 반영한 것을 알 수 있다. 야곱 또한 비슷했을 것이다. 조용한 성격이었기에 장막에 거하며 요리를 하는 등 다소 여성스러운 일을 하면서 지냈다.

이렇게 에서와 야곱의 직업 선택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집안의 편애는 문제였다. 어떤 편 가르기가 있었는가?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했기에 에서를 좋아했고 리브가는 아마도 가사를 잘 도와주었기에 야곱을 편애했던 듯하다(28). 비단 가정뿐만 아니라 일터에서도 이런 편애로 사람들이 편이 갈리기도 한다. 함께 일을 하다보면 그저 괜히 싫은 사람도 있고 특별한 이유도 없이 좋은 사람도 있어서 파벌이 생기기도 한다. 학연, 지연, 취미연 등으로 줄이 자연스럽게 생기기도 한다. 어떤 이유에서거나 이런 편애와 편 가르기는 잘못이다.

이 집안의 편 가르기가 얼마나 심했는가? 야곱이나 에서는 모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야곱은 집에서 열심히 죽을 쑤었고 에서는 들로 나가서 매우 지칠 때까지 뛰어 다니면서 사냥을 했다. 그런데 야곱은 허기진 형에게 죽 한 그릇 나눠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까?(30-31) 어쩌면 그렇게도 배고파 허덕이는 사람 앞에서 매정하게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권을 사려고 했을까? 때로 우리 크리스천 직장인들도 경쟁이 치열한 직장 생활 속에서 동료들과 따뜻한 식사 한 번 제대로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우리 동료와 나누어야 할 것들은 복음과 거룩한 성공, 세계 선교의 비전 등인데 그깟 작은 욕심을 눈감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비전 바겐세일?(32-34)

한편 에서는 배고픔 때문에 자신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실수를 했다. 당시에 장자의 명분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나중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장자였다(4:22). 장자에게는 재산을 두 몫 주고 가정의 책임을 지게 한 것은 아버지의 기력이 장자에게서 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족을 꾸려갈 권리와 책임이 장자에게 있기 때문이다(21:17). 그런데 에서는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자기의 비전을 바겐세일하고 말았다.

히브리서 1216-17절은 에서의 장자권 세일을 비난하고 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망령된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베벨로스는 거룩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성품의 사람을 말한다. 에서는 미래 가치를 내다보지 못한 것이다. 자신이 가진 꿈이 얼마나 거룩한 것인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크나큰 실수였다.

한편 방법은 문제가 있었지만 야곱은 에서와 달리 자신의 비전을 염두에 두고 산 사람이었다. 야곱이 이 장자의 명분에 집착한 것은 부모님에게 들은 하나님의 뜻을 수긍한 것이기도 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25:23).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엉뚱한 행동을 유발한다!(27:1-10)

리브가와 야곱은 이삭이 집안의 가장으로서 죽기 전에 해주는 유언 축복을 매우 중히 여겼다. 그런데 거짓된 방법을 써서라도 그렇게 축복을 받으려고 집착했던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었을까? 야곱이 에서보다 큰 민족이 된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25:23)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의 거짓된 행동은 불신앙에 기초한 불안감이 큰 원인이었다고 진단할 수 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꿈을 이루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상당히 위험하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한다면 그것은 성경적 사고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주의적 방법론이라고나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의 일터나 우리 사회에는 이런 가치관이 팽배해 있다. 결과만 좋으면 과정의 잘못도 용인하고 덮어두려고 한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결과를 얻어내려는 못된 풍조가 만연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처리하실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가만히 앉아있는 것도 최선은 아니다. 과연 야곱이 어떻게 행동했어야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서 약속하신 복을 자연스럽게 받을 수 있었을까? 가상 시나리오를 써봄직도 하다. 야곱이 그렇게 거짓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그에게 갈 것이라고 예언된 장자권이 여전히 형 에서에게 머물러 있었겠는가? 미래를 하나님이 인도하실 줄 확신한다면 하나님의 방법대로만 노력하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불신앙이 결국 이런 잘못된 방법론을 정당화시키며 무리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비전은 어떻게 해서든 내가 쟁취할 것은 아니다(27:11-45)

리브가와 야곱이 이삭의 축복을 쟁취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은 윤리적으로 여러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특히 그 거짓()이 하나님의 이름을 빌릴 때 심각해진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짐승을 잡아 요리해 왔느냐고, 뜨끔하게 묻는 아버지에게 야곱은 하나님이 쉽게 짐승을 만나도록 인도해주셨다고 말한다(20). 거짓말의 일상화가 아닐 수 없다. 에서의 옷을 입고 털을 꾸미는 등 온갖 거짓 행동에 더하여 하나님을 팔아먹는 거짓말까지 서슴없이 하면서 야곱은 비전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거짓말은 덮어쓰거나 책임진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리브가는 불안해하던 야곱을 달래면서 거짓이 탄로나 야곱이 받게 될 저주는 자기가 모두 감당한다고 말했다(13). 이때 야곱은 어떻게 했어야 하는가? 만약 이 때 야곱이 어머니를 만류하면서 장자의 복을 가로채는 일을 거절했더라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야곱에게도 그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장자의 복을 스스로 쟁취하려는 야망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장자권을 세일로 사들이던 모습을 통해 보아도 그가 비전을 쟁취하려는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음이 틀림없다.

우리 사회를 보아도 억지로 꿈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억지로 이룬 꿈은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어머니 리브가는 결국 어떤 대가를 치렀는가? 리브가는 이렇게 야곱이 거짓 축복을 받게 하고 멀리 떠나보낸 후 결국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나이 늙어 곧 죽을 것이라던 이삭은 20년 후 야곱이 돌아올 때에도 살아있었으나 리브가는 아들을 다시 못 만나고 세상을 떠났다.

또한 억지로 비전을 쟁취하려다가 결국 야곱은 형제관계에 얼마나 큰 손상을 입었는가?(41-45) 에서는 동생을 죽이려고 덤벼들었고 결국 야곱은 도망을 칠 수밖에 없었다. 야곱 자신도 이런 거짓말과 거짓 행동으로 비전을 쟁취하려 했던 대로 나중에 외삼촌 라반과(29:21-26, 31:7) 심지어 자기의 아들들에게(37:31-35) 치명적인 거짓말을 당했다.

오늘 당신도 아무리 어려운 때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팔아먹거나 억지로 쟁취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어려운 때라도 비전을 잃지 않고 꿈을 귀중히 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세상살이가 비록 힘들고 어렵더라도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비전, 당신의 평생 직업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며 확장해 나가는 비전을 견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원용일 목사의 직장사역 칼럼 7]
[원용일 목사의 직장사역 칼럼 6]